'외계인'이라 불렸던 사나이, 호나우지뉴. 단 3~4년의 전성기로 세계 축구의 판도를 바꾼 전설이 있다. 예측 불가능한 드리블, 무결점 패스, 마법 같은 골로 팬들의 심장을 훔친 호나우지뉴. 바르셀로나에서의 찬란한 시절을 되돌아본다.
🎩 천재의 등장, ‘웃는 마법사’ 호나우지뉴의 유럽 정복기
호나우지뉴의 이름이 전 세계에 본격적으로 각인된 건 2002 한일 월드컵이었다. 호돈신(호나우두), 히바우두와 함께 '3R' 트리오로 활약하며, 브라질을 세계 정상에 올려놓았다. 특히 잉글랜드와의 8강전에서 보여준 중거리 프리킥 골은 전 세계 축구 팬들의 뇌리에 깊이 새겨졌다. 그야말로 ‘있는 줄 몰랐던 공간’을 찾아낸 킥이었다.
이런 독보적인 존재감을 바탕으로 유럽 빅클럽들의 관심이 집중되었고, 그 중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FC 바르셀로나가 영입에 사활을 걸었다. 처음엔 맨유 이적이 유력했다. 이미 이적료 협상이 완료됐고, 호나우지뉴의 절친 클레베르송도 맨유행을 확신하고 있었다. 그러나 물밑에서는 바르셀로나가 집요한 설득을 이어갔고, 산드로 로셀리 부회장의 개인적 인연과 정서적 호소가 주효하게 작용했다.
당시 바르사는 암흑기를 겪고 있었다. 리그 성적도 저조했고, 재정도 빠듯했다. 그러나 '호나우지뉴만큼은 잡아야 한다'는 강한 의지로 2500만 유로를 쏟아부었다. 그리고, 그것은 결국 바르셀로나의 역사 자체를 바꾸는 선택이 되었다.
⚽ 바르셀로나의 부흥을 알린 ‘0시 5분’의 드라마
호나우지뉴의 바르사 데뷔전은 한 편의 영화 같았다. 브라질 대표팀 소집으로 리그 일정과 겹쳐 출전이 불투명했지만, 바르사는 리그 사무국에 요청하여 자정 5분에 킥오프하는 초유의 경기를 성사시켰다.
그리고 그날, 3만 명의 팬들은 그를 보기 위해 평일 밤잠을 미루고 캄프누로 향했다.
경기는 답답했다. 전반 내내 세비야에 끌려갔고, 분위기는 바르사에 불리했다. 그러나 후반, 호나우지뉴는 중앙선 부근에서 공을 잡아 드리블로 치고 나가더니, 곧장 중거리슛을 때려 골망을 흔든다. 경기 결과는 1-1 무승부였지만, 팬들은 마치 우승이라도 한 듯 환호하며 귀가했다.
그 순간, 모두가 깨달았다. 이 선수는 ‘결과’가 아닌 ‘희망’을 안겨주는 존재임을.
이후 바르셀로나는 그의 중심 아래 완전히 다른 팀으로 변모한다. 데쿠, 사무엘 에투 등의 전력 보강과 어린 메시의 등장, 그리고 레이카르트 감독의 안정적 운영이 맞물리며, 바르사는 리그와 유럽 대회에서 강력한 위용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 중심엔 언제나 호나우지뉴의 ‘잇몸 미소’와 마법 같은 플레이가 있었다.
👑 마법사의 전성기, 그리고 레알 팬도 박수를 보낸 날
2005년 11월 19일, 호나우지뉴는 레알 마드리드의 홈구장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서 전설의 경기를 펼친다. 당시 레알은 호나우두, 지단, 베컴 등 초호화 멤버를 보유한 '은하계 군단'이었다. 하지만 호나우지뉴는 그들을 조롱하듯 유린했다.
경기 중 그가 라모스와 살가도 사이를 가볍게 드리블로 뚫고 들어간 뒤, 골을 넣은 후에도 베르나베우 홈 팬들이 일어서서 박수를 보냈던 장면은 지금도 회자된다. 상대 팬이 박수를 보낼 만큼, 그의 퍼포먼스는 압도적이었다. 이날 경기로 그는 발롱도르 수상자가 되었고, 그 누구도 이견을 제시하지 못했다.
이후 챔피언스리그에서도 맹활약하며 벤피카, AC밀란, 아스널 등을 연달아 격파하며 2005-06 시즌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견인한다. 호나우지뉴는 단순한 축구 스타가 아닌, 문화 아이콘이 되었고, 바르셀로나는 다시 유럽 정상의 클럽으로 부활했다.
그는 메시에겐 스승이자 멘토였다. 어린 메시가 1군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바르사의 새 시대를 열어준 ‘첫 퍼즐 조각’이 바로 호나우지뉴였다. 팬들은 그를 신앙처럼 믿었고, 경기를 보는 이유로 여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