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 / 2025. 4. 23. 16:26

“전설은 다시 깨어났다… 박찬호의 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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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호가 부활을 알린 필라델피아 필리스 시절, 2009년 월드시리즈에서 보여준 ‘평균자책점 0.00’의 완벽 투구! 역대급 라인업을 상대로 흔들림 없이 이어간 그의 혼신의 역투를 되돌아보며, 박찬호가 다시 MLB 정상 무대에 섰던 그날을 기록합니다.

완벽한 투구

⚾ ‘패배를 잊은 남자’로 돌아온 박찬호의 부활

2009년, 필라델피아 필리스의 불펜에는 특별한 존재가 있었다. 그 이름은 박찬호. 한때 LA 다저스에서 스타트했던 그는 텍사스, 샌디에이고, 뉴욕 메츠 등을 거치며 MLB에서 10년 넘게 살아남았지만, 전성기 시절의 위력을 점점 잃어가던 시점이었다. 그런 그가 ‘우승을 노리는 팀’ 필라델피아 필리스의 월드시리즈 엔트리에 포함되었고, 그 결정은 곧 ‘신의 한 수’가 되었다.

2009년 월드시리즈 4차전. 상대는 뉴욕 양키스. 박찬호는 팀이 4-2로 뒤지고 있던 7회, 선발 블랜턴을 이어 등판한다. 무려 상대는 데릭 지터, 알렉스 로드리게스, 마크 테세이라, 마쓰이 히데키 등 최강 라인업이 포진한 양키스였다. 그 압도적 분위기 속에서 박찬호는 전혀 주눅 들지 않았다. 첫 상대 세배시아를 범타 처리하며 첫 이닝을 가볍게 막았고, 이어 나온 타자 데이먼과 테세이라를 삼진과 범타로 요리하며 무실점 행진을 이어간다.

특히 주목할 점은 박찬호의 빠르고 날카로운 포심 패스트볼과 슬라이더, 그리고 변화구의 조화였다. 이날 보여준 구속 자체는 메이저리그 평균을 약간 웃도는 수준이었지만, 낮고 예리한 코스 제구와 공격적인 피칭으로 승부수를 던졌다. 위기 상황에서도 흔들림 없이 마운드를 지키는 모습은, 한때 "아시아 최초 메이저리거 선발투수"로 불렸던 그 시절의 박찬호 그 자체였다.

🧤 ‘0.00 ERA’의 진짜 의미 – 흔들리지 않는 불펜의 가치

박찬호가 월드시리즈에서 기록한 성적은 평균자책점 0.00. 말 그대로 ‘단 한 점도 허용하지 않았다’는 의미다. 월드시리즈라는 극한의 상황에서, 그것도 압박감이 극도로 높은 7~8회 중반 불펜 역할을 맡은 상황에서 이 수치는 결코 쉽게 달성할 수 있는 기록이 아니다.

특히 이날 경기 중 박찬호는 3루 주자까지 허용된 상황에서도 실점 없이 이닝을 마무리한다. 대표적인 장면이 8회 초 1사 3루 상황에서 닉 스위셔를 땅볼로 유도하며 아웃카운트를 추가한 장면이었다. 평소라면 희생플라이로 추가점이 나올 수 있는 장면이지만, 박찬호는 냉정하게 타자의 타이밍을 무너뜨리며 병살 가능성을 살렸다.

이런 박찬호의 투구가 더욱 빛났던 이유는, 그 해 필라델피아 불펜진이 전체적으로 기복이 심했다는 점 때문이다. 에이스급 선발은 풍부했지만, **믿고 맡길 수 있는 세팅맨(7~8회 중간계투)**이 필요했고, 그 자리를 박찬호가 완벽하게 소화해냈다. 감독 찰리 매뉴얼 역시 박찬호에 대해 “믿고 쓸 수 있는 베테랑”이라고 말하며 그를 계속 마운드에 올릴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설명한다.

결국 그의 이런 안정감 덕분에 필리스는 마지막까지 월드시리즈 우승을 다툴 수 있었다. 비록 팀은 우승을 놓쳤지만, 박찬호 개인에게는 MLB 커리어 후반기 가장 빛나는 순간이었음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 아시아 최초 메이저리거의 품격, 그리고 야구의 본질

박찬호는 이날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아직 던질 수 있다고 믿었다. 그리고 오늘, 마운드 위에서 그걸 증명했다.”
이 짧은 멘트는 단순한 자축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이제는 로스터에서도 밀려날 수 있는 노장 투수, 마이너와 빅리그를 오가며 커리어의 끝자락을 걷던 박찬호가, 월드시리즈라는 무대에서 모든 걸 쏟아부은 결과였다.

더욱 인상적인 건 그의 태도였다. 그는 경기 내내 무표정에 가까운 진중한 표정으로 임했고, 실점 위기에서조차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다. 상대가 누구든, 상황이 어떻든, ‘나는 야구를 잘하고 싶다’는 순수한 열정이 박찬호를 이끌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정신은 우리에게 ‘야구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한다. 성적보다, 이슈보다, 박찬호의 투혼이 감동적이었던 이유는 결국 그는 마지막까지 ‘선수로서 최선을 다했다’는 태도를 보여줬기 때문이다. 그의 피칭은 단순한 볼-스트라이크의 싸움이 아니었다. 그것은 자존심의 투쟁이자, 야구라는 게임을 향한 순수한 경배였다.

이후 박찬호는 필라델피아를 떠나 피츠버그를 거쳐 일본에서도 뛰게 되지만, 2009년 월드시리즈 필리스 시절은 그의 커리어에서 하나의 결실이자 상징으로 남는다. 그리고 그 기록은 숫자보다도, 야구 팬들의 마음속에 가장 오래 남아 있는 투혼의 상징으로 남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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